인간 비합리성의 이해: 자기기만에서 깨달음으로
인간은 본래 비합리적이다.
최근에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하여 느낀 점이 많아 어떻게 해야 그런 자기 판단의 오류를 객관적으로 생각할까 하는 관점에서 고민하게 되어 작은 소회를 표현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자신이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의 뇌는 항상 인지 편향과 감정적 필터를 통해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동서양 철학 모두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이런 불편한 진실을 피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다룸', '승화', '통찰'과 같은 모호한 개념으로 위안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의 욕심은 단순한 '복잡한 측면'이 아니라, 자기 파괴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원인이다. 매일 우리는 자신에게 해로운 결정을 내리면서도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스스로를 속인다.
이런 자기기만은 개인적으로는 건강 문제나 재정 위기를, 사회적으로는 환경 파괴나 불평등 같은 문제를 일으킨다.
진정한 깨달음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비합리성을 직시하고, 이성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욕망과 편향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는 편안한 과정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자기성찰과 끊임없는 주의를 요구한다.
여러 철학에서 본 인간의 비합리성
여러 철학 전통에서는 인간의 비합리성을 중요한 주제로 다뤄왔다.
서양 철학에서는:
- 칸트는 우리가 실재 그대로를 인식할 수 없다고 보았다('현상계'와 '물자체' 구분).
-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맹목적 의지'에 지배받는 존재라고 보았다.
- 니체는 '이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권력의지의 표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 카뮈는 인간이 의미를 갈구하면서도 본질적으로 의미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모순을 지적했다.
- 하이데거는 인간이 본래적 존재 가능성에서 벗어나 일상적 관념에 매몰되는 경향을 설명했다('퇴락').
동양 철학에서는:
- 불교의 '무명'과 '망상' 개념은 우리의 근본적 무지와 착각을 지적한다.
- 선불교의 '망념'은 우리가 끊임없이 생성하는 허구적 사고를 가리킨다.
- 도교의 '인위'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는 인간의 계산적 사고를 비판한다.
현대 과학에서는:
- 인지과학의 '인지 편향'과 '휴리스틱' 연구는 우리의 판단이 체계적으로 왜곡됨을 보여준다.
- 행동경제학의 '제한된 합리성' 개념은 인간의 결정이 불완전한 정보와 인지적 한계에 기반함을 증명한다.
-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은 우리 행동이 의식적 이성보다 무의식적 충동에 더 지배받음을 드러낸다.
- 융의 '그림자' 개념은 우리가 자신의 부정적 측면을 인식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투사하는 경향을 설명한다.
이 모든 개념들은 하나의 사실을 가리킨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이며, 진정한 깨달음은 이 사실을 직시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기기만을 극복하는 방법
자기기만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실천적 접근이 있다:
- 철저한 자기관찰 - 자신의 생각과 행동 패턴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라. 비트겐슈타인의 '명료성' 개념과 불교의 '위파사나' 명상법이 이를 강조한다.
- 의도적 불편함 추구 - 스토아학파의 '프라메디타티오 말로룸'과 선불교의 '화두' 수행처럼, 의도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직면함으로써 자신의 편향과 집착을 드러내라.
- 체계적 의심 -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나가르주나의 '중관' 사상처럼, 자신의 모든 신념을 의문시하는 태도를 가져라. 특히 가장 확고한 믿음일수록 더 철저히 의심하라.
- 사회적 거울 -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적 합리성'과 유교의 '정명' 개념처럼, 다른 사람들과의 진정한 대화를 통해 자신의 맹점을 발견하라. 특히 자신과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가 효과적이다.
- 실패의 수용 - 베케트의 "계속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는 말과 선불교의 '무심' 개념처럼, 완벽한 이성적 존재가 될 수 없음을 받아들여라.
삶의 의미로서의 자기성찰
여러 철학 전통들은 깨달음의 목표를 다르게 정의한다. 그런데 많은 철학 전통들은 '목표 자체에 대한 집착'마저도 또 다른 자기기만의 형태로 본다. 특히 선불교나 도교에서는 깨달음이나 도를 '얻으려는' 의도적 노력 자체가 깨달음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간주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비이성적인 존재이기에, 철학적 탐구의 궁극적 목표는 어떤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비합리성과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이를 통해 더 깊은 자기이해와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끊임없는 행로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기만에서 점차 벗어나 실재와 더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된다. 결국 자기성찰과 깨어있음의 지속적인 실천이야말로, 우리의 불완전함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삶의 목적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깨달음에 이를 때,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 자유로워지고, 더 진실된 삶을 살게 된다.
진정한 깨달음은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 덜 해로운 선택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비합리성을 인정할 때, 우리는 역설적으로 그것에 덜 지배당하게 된다.
이것이 인간 존재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 완벽함이 아닌, 불완전함 속에서의 끊임없는 자기발견과 성찰의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