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각

신분제의 귀환: 디지털 시대의 양반과 상민들

senskim100 2025. 3. 24. 08:15

1. 망상의 사다리: 부동산 신화의 몰락

"집 사놓으면 무조건 오른다. 대출받아서라도 사야 한다."

박 과장(38세)은 친구들의 이런 조언에 시달리며 밤잠을 설쳤다. 엄청난 대출을 감당할 자신은 없지만, 이대로 가다간 평생 '내 집 마련'의 꿈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벌써 그의 또래 친구들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해서 아파트를 장만했고, 몇 년 사이 '시세 차익'으로 웃고 있었다.

그러나 뉴스에서는 미래에셋 회장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중국은 10년간 부동산을 억제하고 기술 발전에 집중했습니다. 반면 한국은 부동산 담론에 갇혀 있었죠.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이후 중국은 모든 기업이 AI에 투자를 늘린 반면, 한국은 챗GPT가 등장하기 전까지 AI가 언급되는 일이 드물었고, 부동산이 국가 전체의 화두였습니다."

박 과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알던 대한민국은 언제나 '부동산 공화국'이었다. 부모 세대는 부동산으로 부를 쌓았고, 그의 세대는 그 거품이 터져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희망 없는 내일을 맞이하고 있었다.

2. 자영업 지옥: 꿈의 무덤

"내 가게 하나 차리면 인생 역전이지."

김 부장(58세)은 32년간 다닌 회사에서 퇴직 후 이런 희망을 품고 카페를 창업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그의 월 소득은 고작 142만원.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다. 배달앱 수수료, 임대료,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카페는 그를 점점 빚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50세 이상 자영업자의 48.78%가 최저임금보다 적은 수입을 올린다고요? 하, 저는 그중에서도 더 적게 버는 쪽이네요."

통계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자영업은 이제 중장년층의 '퇴직 후 대안'이 아니라 '절망의 종착역'이 되고 있었다. 특히 경험 없는 업종에 뛰어든 이들의 평균 소득은 겨우 144만원, 그중 82.8%가 저임금에 시달렸다.

한국 사회는 퇴직자들을 재취업 시장에서 밀어내고, 준비 없는 창업의 늪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실패한 그들에게 '노력이 부족했다', '시장이 어렵다'는 위로를 건넸다. 시스템의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오래된 사회적 기제였다.

3. 신분제 사회의 귀환: 디지털 양반과 디지털 상민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와 판교의 테크 밸리. 이곳에서는 '디지털 양반'들이 호의호식했다. 이들은 기술과 자본을 독점하며 새로운 귀족계급으로 군림했다. 연봉 1억은 기본, 스톡옵션으로 수십억을 손에 쥐고 강남 아파트를 매입했다.

반면 서울 외곽이나 지방 도시에서는 '디지털 상민'들이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쳤다. 배달 라이더, 택배 기사, 편의점 알바, 공장 노동자... 그들은 플랫폼이 제시하는 최저 단가에 목숨을 걸고 뛰어다녔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노력이 부족해. 우리 때는..."

최 사장(67세)의 말은 공허했다. 그가 살던 시대와 지금은 달랐다. 그때는 대기업에 입사하면 평생 직장이 보장됐고, 월급으로도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지금의 20~30대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고도 취업문을 두드리다 지쳐갔다.

사회적 이동성은 이제 신화가 되었다. 부모의 자산과 배경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는, 조선시대의 신분제가 21세기에 부활한 셈이었다.

4. 환각의 미디어: 현실 도피의 도구들

"오늘 아이돌 월드투어 소식 들었어? 대박이야!" "연예인 A와 B가 결혼한대. 축하해야겠다." "이번 드라마 너무 재밌어. 밤새 정주행했어."

퇴근길 지하철, 사람들은 하나같이 스마트폰 속 연예 뉴스와 아이돌 영상에 빠져있었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세계 최저 출산율의 나라에서 사람들은 잠시나마 현실을 잊기 위해 화려한 연예계 소식에 탐닉했다.

"1970년대 전두환 정권이 3S(스포츠, 섹스, 스크린) 정책으로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분산시켰다면, 지금은 K-pop과 연예뉴스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한 사회학자의 분석은 날카로웠지만, 곧 '꼰대 발언'이라는 비난에 묻혀버렸다. 사람들은 현실의 고통보다 가상의 즐거움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체제를 유지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었다.

5. 파괴된 사다리: 희망의 몰락

창업은 실패하고, 취업은 불가능하며, 부동산은 폭등하고, 노후는 보장되지 않는 사회. 이런 현실 속에서 청년들은 '희망 고문'에 시달렸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다." "성실하게 저축하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

이 모든 '헛된 약속'들은 이제 젊은이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노오력'이라는 신조어는 '노력'이 더 이상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현실을 비꼬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개인의 노력'을 강조했다. 시스템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교육, 노동, 복지, 주거... 모든 영역에서 사회적 안전망의 불안 요소가 우려스럽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성장'과 '포장'만을 이야기했다.

6. 괴리된 세계: 디지털 양극화의 심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한다고요? 그건 고숙련 직종의 이야기겠죠."

이 교수(52세)의 말은 냉정했다. AI 혁명은 모든 이에게 축복이 아니었다. 기술의 발전은 소수에게 부와 권력을 집중시켰고, 다수는 단순 노동으로 내몰렸다.

한국은 기술 혁신의 기회를 놓쳤다. 중국이 AI와 첨단 제조업에 투자할 때, 한국은 부동산 거품을 불리는 데 몰두했다. 그 결과 2025년 한국은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진 '디지털 변방국'으로 전락했다.

"우리 아이가 커서 뭘 하고 살아야 할까요?"

평범한 직장인 윤 과장(41세)의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10년 후의 일자리 지형도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지금처럼 기술 혁신에 뒤처지고, 부동산에만 의존하며, 청년들을 자영업 지옥으로 내모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는 것.

7. 미완의 변혁: 우리가 마주한 선택

"10년 전 중국이 부동산 과열을 억제하고 기술에 투자했을 때, 우리는 그들을 비웃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우리를 앞질렀다."

강 교수(55세)의 경고는 쓸쓸히 공중에 흩어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지금 아파트를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고, 정치인들은 '부동산 정책'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모든 이가 착각 속에 살았던 것은 아니다. 곳곳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기술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와 공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부동산이 아닌, 기술과 교육에 투자해야 합니다." "자영업자와 노인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런 목소리들은 아직 작았지만, 점점 커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과거의 착각에 계속 사로잡혀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길을 과감히 모색할 것인가. 그 선택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조선사회'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변화해왔다. 지금의 위기가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단, 우리가 정직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과감한 변화를 선택한다면.